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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을 생각하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뭘까. 고통이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라는 그럴듯한 말 말고, 고통이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사실 고통은 안타깝지만 성장보다 퇴화를 더 많이 가져온다. 고통을 뚫고 일어나 무언가가 되는 건 기승전결을 가진 영웅 인물 서사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고통 덕분에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완성된 경우가 더 많지 않던가.

우리는 소설, 음악, 드라마, 영화 등에서 영웅적 인물의 성장기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보잘것없는 인물이 각종 역경을 거쳐 영웅적 인물이 되는 걸 보면서 작은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만약 예술에서 그리는 영웅적 인간의 삶이 현실에 흔하게 존재했다면 그만큼 감동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세상 모든 사람이 아름답고, 예쁘고, 조각 같다면 우리는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는 주요한 재료면서도 인간 다움을 잃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재료다. 그러니 사탄이 욥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욥에게 주셨던 것들을 전부 빼앗아보라(고통을 줘봐라)는 이야기를 했겠지. 우리는 욥기를 읽으면서 절망에 빠진 인간과 시련에 빠진 사람에게 더 가혹한 말을 뱉는 주변 인물들을 본다. 욥기를 읽을 때마다 그 안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실들을 본다. 그중 하나는 고통은 애써 피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말 소중했던 가족(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저주하고 떠났다.), 친했던 친구들이 상처를 주고(하나님께 뭘 잘못했는지. 분명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이런 벌을 받은 거라고 논리성을 가장한 멍청한 이야기들을 한참 떠든다.)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욥만 남아있다. 욥이 깨진 도자기로 더러운 몸에 잔뜩 부스럼이 난 곳을 긁는 것을 읽고, 상상할 때마다 움찔한 기분이 들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찌나 인간적인지 가슴 아프다. 그래서 부족하고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성경이 진짜고,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거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고통 속에 머무를 때 우리는 어그러진 렌즈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고, 세상을 바라본다. 어그러진 렌즈 덕분에 삶에 더 많은 문제를 불러오고, 아픔을 만든다. 그러니 인생에 고통이 찾아왔다면 인간관계든 뭐든 전부 멈추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많은 심리학자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씀이 있다. 정말 힘이 들 때는(우울증, 번아웃, PTSD 등) 어떤 관계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의존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존하고 싶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더 나쁜 관계를 선택하고, 나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가장 힘들 때 사기꾼에게 먹잇감이 되고,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교주 덕분에 고통에서 구원(?)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있던 고통을 보지 않도록(마주 하지 못하도록)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와 과제를 주는 그들 덕분에 고통을 보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게 과연 구원일까. 저주일까.

나는 지난 날들 속에서 내가 아프기 때문에,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과 사람을 어그러지게 보고, 타인을 어그러 뜨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고 있는 마음 렌즈가 깨끗한지, 굽어지진 않았는지 살피고 또 살핀다. 그 작업 중 하나가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모습으로(인간은 고통 속에 머물고, 상처를 깊이 받으면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을 보인다.) 타인 삶에 영향을 주고, 파괴하는 인간이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고통을 계속 피하고, 감추다 보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고통이 멈춤 버튼을 눌러 줬다면 그 자리에서 잠시 쉬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된다.

매일 글을 적고, 심리학 관련 영상을 보고, 강연을 듣고, 관련 책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인간은 고통을 숨기려고 할수록 고통이 삶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아프지 않으려고 숨겼던 많은 진실들이 한 인간을 더 많이 어그러뜨린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고통은 인간을 더 굳고, 편협하고, 이기적으로 만든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리플리 인간을 볼 때 고통을 감추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고통을 마주해야 한다. 시간이 지연돼서 더 이상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신체, 정신적 나이가 찾아오면 그때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우는 일 밖에 없을 수 있다. 머리가 하얗게 되고, 얼굴에 굴곡이 가득해지고서야 인생을 헛살았다고 우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본인도 곁에 있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들이 그들의 자녀와 손자까지 똑같은 길을 밟아오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상처와 고통은 그대로, 혹은 더 배가 되어 세대를 통해 상속되고 전염된다.

그럼에도 정말 좋은 소식이 있다. 고통은 마주하고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사실이다(스스로의 삶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쓰고 보는 행동들이 결국 원했던 참된 자유를 가져다준다. 치유 글쓰기 책들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해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된다. 나도 그 길을 그대로 지나오면서 알고 깨닫게 됐다. 고통스러워서, 두려워서, 수치스러워서 감춰뒀던 많은 것들을 내 입으로, 손으로 드러내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자유 함이라는 풍요의 감정이 찾아왔다.).

적어놨기 때문에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상시 상영해야 했던 것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가벼워진 머리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고통을 마주하기 위해 상처를 적기 시작했을 때 일어난 좋은 일 중 하나였다. 기억을 왜곡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고, 적어놨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진짜 자유를 얻게 된다.

모두가 치부라고, 숨겨야 한다고, 그래야 너도 나도 안전하다고 했던 것들을 드러내자 오히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이야기가 됐다. 인간은 모두 유일하기 때문에 걸어온 삶 하나하나가 드라마고, 역사가 된다. 그러니 고통은 한 인간을 아름답게 완성해 주는 세상에 하나뿐인 드라마 재료가 된다. 그 재료를 오직 자신 만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오직 그 사람만이 가진 이야기(스토리)는 그 사람만의 인생을 완성하고, 나아가 삶을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고통을 마주할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고통을 마주하면서 진짜 바닥에 있는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해 가면서 세상에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고통을 마주하고, 고통을 드러내고, 그 속에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진짜 나를 찾았다. 그래서 지난날들을 아프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를 완성한 것들이 과거의 고통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오늘의 나는 내가 나의 가족, 친구, 연인이 돼서 사랑하는 사람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그 어떤 것도 겪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일을 가장 먼저 내게 선물하는 내가 되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인생을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들이 버겁지 않고, 두렵지 않다. 편안하게 천천히 내 걸음으로 걸어가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 쓸데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가진 것이 없다고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찾아오고, 행복과 불행은 사람마다 각자의 몫으로 주어지는 거니까. 나는 나의 행복을 바라보며 고통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을 성장시켜 간다.

매일이 아름다울 순 없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선택할지는 온전히 내 몫이고, 내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오늘. 여기에. 산다. 드디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로 사는 것이 이제 기쁘고, 행복하다.

열심히 기록하고, 적자. 그리고 진짜 나로 살다 가자.라고 매일 나를 다독이며 나는 오늘을 걷는다.

#오늘을사는것
#고통속에얻는것
#고통을바라보는눈
#나로사는것
#나로사는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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