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책을 읽는 중 기록
<고집이 센 내가 좋은 이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무겁고, 두렵고, 아픈 단어였다. 사실 꽤 오랫동안 가족에 대한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 주변의 사람들도 유해하다고 말할 만한(책 속 글로 판단해 보면) 가족 안에 속해 있었다. 더하거나 덜 할 뿐 유해하다는 면에서 다를 바 없는 가족 구성원 안에 속한 사람들만 신기하게 쏙 쏙 골라내 친구가 됐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가정이 파괴적이고,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행복해 보이는 간판만 내 걸고, 그 안에서는 온갖 사회적 악이 행해질지도 모른다고 마음대로 판단했다(사회적 악이 행해지는 일도 있었다.).
이 책은 '썸머의 사이다힐링'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게 됐다. 신간이라 이제 막 나온 책으로 '썸머의 사이다힐링' 채널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고 있었다. 서평단은 되지 않았다. 신청자가 너무 많았고(구독자가 4만 명이 넘음), 나보다 훨씬 필요한 분들이 많아 보였다(댓글 사연들을 보니). 그럼에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강렬했는지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다가왔다. 살면서 항상 신기하다 생각한 게 있다면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조금만 해도 삶에 좋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는 거다. 어릴 때부터 잘못된 교육방식으로 내 사고는 부정적인 생각과 나쁜 생각들로 오염됐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고, 두려움과 걱정도 많다.
생각이 많아 생각과잉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인 데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았었다(수면제와 멜라토닌까지 먹음). 유해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자란 덕분에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것이 훨씬 편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선지 긍정적인 열망과 생각을 조금만 해도(정말 강렬하게 해야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이 가능하다.) 생각들이 삶에 선물처럼 다가와 주곤 했다. 사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치환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건 정말 쉽고, 심지어 똑똑해 보이기까지 한다.
내면에 비판자가 상주하고 있는 내겐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조언을 하고, 현실을 가장한 부정적인 것들을 삶에 들이는 것이 내 옷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왔다. 거의 화를 내지 않고,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이는 내게(타인들의 평가) 내면은 파괴적 이리만큼 발을 휘저어야 하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혹은 백조)라고 표현하면 맞을 거다.
이 책은 당분간 서평단 신청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요즘의 일상에서(요즘 나는 출판사의 서평 권유도 거절하고 있다.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다.) 서평단 신청을 했다가 인연이 닿지 않았던 책이다. 이때 나는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소상공인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예비 창업자의 경우 소상공인 도서관에서 (소상공인은 매달 3권) 매달 신간 도서 1권을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이 책이 신간이라선지 맨 윗 칸에 올라와 있었고 보자마자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읽어가는 중이다. 책을 다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천천히 읽어가던 오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이 들어 글을 쓰는 중이다. 매일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현재 68% 읽었고, 며칠 내로 다 읽을 생각이다.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글 중 내면에 파고든 글귀가 있다. 고집이 세다는 표현을 올바르게 바꿔준 문장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숱하게 고집이 세서 고쳐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문장이 항상 아팠다. 책 안에서 저자는 고집이 세다라는 말을 '인내하는 법을 알고 결단력과 확신이 있다'는 표현으로 바꿔줬다. 그 말을 보고서야 나는 정말 인내력이 엄청날 만큼 좋은 사람이고, 결단력과 확신이 뛰어난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졌고, 과거의 내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가끔 고집이 세기 때문에 고쳐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이 필요하다고 했던 친인척 사람들의 강렬한 어조가 어제 일처럼 생각나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고집이 세다는 표현을 긍정언어로 바꾸니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깊은 위안을 받았다.
고집을 고쳐주기(왜 고쳐준다는 표현을 했는지 어이가 없다.) 위해 때릴 수밖에 없었다는 친인척 인간들이(특수 폭행에 해당할 만한 폭력이었다.) 행위를 할 때 가족 구성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나중에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내게 이유를 물었던 아버지는 누구나 그 정도는 맞고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상담을 받든, 정신과를 가든 그건 자기 문제가 아니니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또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아버지께 '내가 자란 곳의 내 또래 아이들 누구도 나처럼 맞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개 패듯 맞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폭력이 내게 일어났을 때도(10살 언저리) 주변의 아이들은 봄날의 꽃을 기억하며 그날을 행복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같은 장소에 있었던 친척에게 이 날의 기억을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이 날을 아름답게 기억했다. 이 날 나를 때렸던 친인척 어른이 주변에서 뛰놀던 친인척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가 없으니 잘해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며 그날 내게 행해진 폭력에 대해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날 폭력의 이유는 내가 '고집이 세서' 고쳐주기 위해서였다.
절대적인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절대적인 방임 포함) 작은 폭력(언어폭력 포함)에도 트라우마 때문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자신을 학대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 보살피는 사람이 되거나, 학대자가 되어 상처를 전이할 만한 피해자를 찾아내 반드시 피해자를 만든다.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된 사람은 자신의 가해 행위를 과거 경험을 빌어 정당화한다.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도 피해자였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 안타깝긴 하지만 아픈 경험을 했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 선택은 자기가 한 것이니 과거를 탓하며 뒤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유해한 가족 안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어 살아간다. 직접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뉴스와 영화에만 나올법한 일들이 수두룩하게 일어나는 곳이 가정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안전하고,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한 가족은 어쩌면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만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안전하고,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드디어 만들었다. 스스로 학대를 끊어내고,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상처에 대해 공부하면서 대를 이어 내려오던 상처를 드디어 내가 마감했다. 드디어 이 나이가 되고서야 가족을 끊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적당히 지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환상에 불과했다. 희생양(스케이프고트) 지위에서 나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드디어 인정하게 된 사건을 마주하고 나는 가족을 끊었다. 그날의 사건이 있은 후(성인이 되고였음) 트럭에 치인 것 같은 감정적, 육체적 고통을 한 달간 느꼈다. 매일 울고, 또 울고, 먹고, 또 먹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기간 동안 그 누구도 연락해오지 않았다. 몇 달 지나고 내가 필요해졌을 때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말로 연락이 시작됐다.
어떤 사람들은 제대로 상황도 모르면서 관습과 종교를 들이대며 가족을 만나지 않는 나를 탓한다. 어른이 되고서도 용서하지 못한다며 2차, 3차 가해를 의식, 무의식적으로 가한다. 그럴 때 나는 더 많이 아팠고, 상처받았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생각과 결심을 왜 내게까지 강요하는지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을 바라보니 그 역시 그 안에서 피해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순전히 자기변호였던 것이다. 가해자가 되기 위해, 혹은 피해자로 살기 위해 타인의 삶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자기 위안과 안정을 누리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좀 꺼져주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줬다고, 먹이고, 입혔다고, 갚을 수 없는 은혜가 생기는 걸까. 은혜라는 말을 들을 때 항상 뭔가를 갚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목이 메었다. 어릴 때 한의원에 간 적이 있는데 한의사 선생님께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가슴에 울혈이 맺혔다고 하셨다. 나중에 정말 간이 문제가 될 거라고도 하셨다. 그래서 작년까지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 내게 정말 간 문제가 생겼었다. 나는 오늘도 가슴 중앙을 살짝만 눌러도 매우 아파 깜짝 놀란다. 과거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받는 것이 불편해 주는 사람으로만 살았다. 관계를 끊어야 할 때마저도 많은 것을 주고, 손해를 봐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름을 짓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말 이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름을 위해 새벽 기도를 하는 내내 하나님의 은혜(이때는 이 찬송을 모르던 때였음. 언젠가 지나가다 들었을 수는 있음.) 찬송이 매일 머릿속에서 무한 재생됐다. 이름을 하나님의 은혜로 바꾸고 나니(심리적인 원인) 무한 재생이 멈췄다.
오늘의 나는 내가 좋아진 만큼 내 이름도 좋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갈수록 가족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은혜라는 단어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됐다.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사랑과 은혜, 갚지 않아도 되는 넉넉한 사랑, 그래서 더 나누고 싶은 사랑이 은혜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나를 더 많이 소중히 대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예전의 나는 조금만 게으른 나를 바도 화가 나고, 내가 싫어 어찌할 바를 몰라했는데, 오늘의 나는 하루 종일 자도 내가 밉지 않다. 일어나서 시작하면 되니까. 라며 사소하게 나를 탓하고 구박하지 않는다. 구박당하는 게 일상이었고, 당연히 구박당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과거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방과 자유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유해한 가족 안에서(신이 주신) 어쩔 수 없이 태어나 자란 나와 당신에겐 잘못이 없다. 그러나 과거를 바탕으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과거야 어찌 됐든 바꿀 수 없으니까. 유해한 가족을 스스로를 위해 끊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말자고 오늘의 나를 위로하고, 다독인다. 꼭 대면해서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해야 할 필요 없이 그냥 흘려보내고 산다. 오늘의 나를 위로하면서, 치료하면서, 어쩌면 가깝고, 먼 미래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깊이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어느 단계에서 성장을 멈추고 울고 있는 나를 과거에서 데려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은 일단, 고집이 센 내가 얼마나 멋진지 알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
#가족을끊어내기로했다
#셰리캠벨
#나로사는기쁨
#고집에대한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