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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세트 사다리 드릴>

<참 잘 구입한 제품>

<뿌듯한 하루>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생성 이미지]
[직접 찍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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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도 전동드릴이 있다>

  집에 있다 보면 자잘하게 고쳐 쓰거나 조립해야 하는 물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직접 해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집안일은 웬만하면 혼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책상 조립하기, 의자 조립하기, 선반 조립하기, 커튼 달기, 블라인드 달기 등. 처음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만족감이 꽤 컸다. 설명서를 읽고 시행착오를 거쳐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은 생각보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얼마 전 남편이 사무실 안에 암막 블라인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존에 달려 있던 블라인드는 예쁘지만 암막 기능이 전혀 없어 작업할 때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뜨겁다고 했다. 알아보니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며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 뉴스를 보게 됐다. 올해는 슈퍼 엘니뇨의 영향으로 유난히 더운 여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햇빛이 뜨거운 정도를 넘어 따갑게 느껴질 만큼 강한 여름이 될 거라는 이야기에 걱정이 됐다. 괜한 호들갑일 수도 있지만, 하루 종일 통창 앞에서 일하는 남편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결국 내가 따로 알아보고 가격이 괜찮은 제품을 찾아 회사로 보냈다.

  블라인드는 @김알파카 님 랜선 집들이 영상에서 발견했다. 가격과 성능을 비교해 보니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주문 후 검수까지 포함해 이틀 정도 걸렸고, 남편은 업무가 끝난 뒤 직접 설치하고 왔다. 설치 사진을 보여주는데 남편이 정말 뿌듯해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웠단다.

"앞으로 블라인드는 내가 다 달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얼굴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사람은 역시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경험하면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분위기를 위해 흰색을 골랐는데, 흰색 블라인드 덕분에 공간이 훨씬 화사해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오후 늦게 지는 태양의 뜨거움과 눈부심이 완벽하게 가려져 정말 만족스럽다고 했다.

  본 적 없는 김알파카 님에게 괜히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좋은 제품 하나를 알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하루가 더 편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오늘 퇴근 후 남편이 돌아오면 블라인드는 어땠는지 또 물어봐야겠다. 벌써 기대된다. 다음에 우리 집에 블라인드를 달 일이 생기면 이제 꽤 전문가가 된 남편에게 부탁해야겠다.

  남편은 가끔 사막에 가야 하거나 지구 종말처럼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오면 반드시 챙겨야 할 것 중 하나가 나라고 말한다. 내가 물건은 아닌데 물건은 다 제쳐두고 나만 있으면 된단다. 사막에 둬도 선인장 뿌리를 캐 먹고 살아 돌아올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웃는데 밉지 않고 귀엽다. 아무래도 별의별 상황을 함께 헤쳐 오다 보니 내 이미지가 남편에게 여장군처럼 굳어진 모양이다.

  지금이야 온실 속 화초처럼 세월아 네월아 지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귀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기보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똑부러지고 강단 있는 캐릭터에 가깝다. 아마 생존형으로 살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보다 버티는 법을 먼저 배웠으니까. 그래서인지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의존하기보다 의존을 당하는 쪽에 속한다. 요즘은 이마저도 조금씩 거절하는 중이다. 의존하는 것도, 의존당하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몇 달 전 커튼을 달면서 시누이 언니의 남편에게 전동드릴을 빌린 적이 있었다. 오후에 빌려주셨는데 다음 날 바로 찾으러 오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때는 전동드릴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집주인 어르신께서 떨어진 등을 달아주러 오시며 가져왔던 전동드릴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우리 집 곳곳을 찾아봐달라는 부탁에 몇 시간을 찾아봤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누가 가져간 걸까. 한동안 내 일도 아닌데 괜히 화가 났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도 전동드릴이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 직접 제품을 알아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시누이 언니의 남편과 집주인 어르신이 왜 그렇게 전동드릴에 애착을 가졌는지를. 그분들이 사용하던 제품은 족히 삼십만 원이 넘는 전문가용 장비였다. 당시에는 그 가치를 몰라 시큰둥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오히려 미안했다. 삼십만 원이 넘는 장비를 잃어버렸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나는 십만 원대 제품을 골랐지만 그것만으로도 구입 버튼을 누르기까지 꽤 오래 고민했다. 어릴 적 집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전문가용 전동드릴이 이렇게 비싼 물건이었다니. 그래서인지 집주인 어르신의 전동드릴을 떠올리면 여전히 아쉽고, 누가 가져간 것인지 궁금하다.

  전동드릴과 사다리를 구입한 뒤 드디어 제대로 사용해 볼 일이 생겨 좋았다. 좋은 제품을 알아보고, 안전한 사다리와 전동드릴 덕분에 사고 없이 블라인드를 설치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블라인드 뿐만이 아니었다.

"블라인드 설치 아무것도 아니구만."

  하며 뿌듯해하던 남편의 얼굴이었다. 별것 아닌 하루였지만, 새로운 일을 해냈다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루. 블라인드 하나를 달았을 뿐인데 우리는 또 하나의 일을 함께 해냈다는 기쁨을 함께 누렸다. 어쩌면 삶은 거창한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성취와 뿌듯함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생활력이 쌓여 서로를 든든하게 만드는 하루. 그리고 그런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배우는 하루였다.

  드디어 우리집에도 전동 드릴이 있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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