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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리본핀을 만들기 위한 재료 구입>




  원하는 제품들을 사러 다니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하고 다니는 편이다. 그러면 시간적으로 효율적이고(원하는 디자인을 찾아다닐 필요 없어서),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도 효율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타인에게 주고 싶어 선물을 하기 위해 무언가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어머님과 어머님 친구분께서 집에 놀러 오셔서 공방을 보시고, 대단하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어머님 친구분은 집주인이셔서 집에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종종 오셨다.). 그러다 어머님께서 아주 작은 말로 "돈도 안 되는 걸 하고는."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내 귀와 마음에 박혔는지, 공방에 들어가서 취미 생활을 할 때면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 그 말이 상처로 박혀 내내 마음이 쓰렸다. 상처가 내 마음을 쓰리게 할 때마다 어머님께 왜 그리 많은 물건들을 드리고, 만들어 드렸는지 가끔 스스로가 참 의아했다. 일부러 혹은 실수로 밉고, 아프게 하고, 소진시키는 사람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싶어서였다. 지금은 그 이유를 찾았으니 이제 됐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참 오랫동안 생각했다. 왜 나는 어머님이 밉다고 하면서(의식,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주시는 어머님을 정말 많이 미워했다.) 어머님께 수많은 선물을 안겨드렸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드디어 깨달았다. 이것 역시 어린 시절 상처와 관련되어 있었다. 어릴 때 나를 키워주신 어머님은 내가 미울 때마다 혹은 스스로의 상처를 내게 전이시키고 싶을 때 특별한 말씀을 하곤 하셨다.

"OO가 너 주라고 옷이랑 이것저것 줬는데. 네가 미워서 너 안 주고 다른 사람 다 줘 버렸다. 그리 알아. 예쁜 구석이 있어야 뭘 주고 싶지. 쯧."

  어머님은 누군가 내 처지가 가여워서 주신 물건들이 있으면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시곤 사촌 언니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주셨다. 나눠 주시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는 것도 그녀의 행복이었겠지만, 무엇보다 차가운 말을 하면 내 눈동자가 흔들리고 상처받는 표정을 보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누가 나에게 뭘 줬든 내게 말하지 않았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굳이 어머니는 누가 내게 무엇을 줬는지 가끔은 물건까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셀 수 없이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가져본 적도 없는 물건과 미움받는 처지가 참 서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성인이 된 후부터 아무리 미운 상대를 만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상대더라도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면(내가 선택했든, 사회적으로 역할을 부여받았든) 어머니처럼 행동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게 그제야 기억났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서 아프게 하는 만큼 어머님께 정말 많은 선물과 물건을 드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참 신기한 건 어머님 역시 나와 완벽히는 아니지만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님은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게 많았고, 필요했던 게 많았던 소녀 시절 이야기를 해 주셨다. 자신을 키우셨던 어머니께 아무리 필요하다고 말해도 '알았다.'라고 말만 하시고 사주지 않으셨단다. 그걸 열 번 백번 말하면 겨우 한 번씩 들어줄 정도였다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과거의 소녀 시절 상처 때문인지 어머님은 나를 만나서도 필요한 게 있거나, 원하는 게 있으시면 들어줄 때까지 반복해 말씀하셨다. 가끔은 얼른 해드려야 그 말이 끝나겠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문제는 하나가 끝나면 게임처럼 다음 퀘스트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퀘스트의 마지막 관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았고 결국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병을 얻었다.

  상처를 받아서 상처 주지 말자고 다짐했든, 상처 때문에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달라고 해야 하는 사람이 됐든, 그 상처의 근원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책임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드디어 했다. 나는 나의 욕구와 필요를 포기하면서 타인의 욕구와 필요를 채워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면서 내 남편에게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만 피해를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의 시간과 인생, 에너지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공의존자(코디 펜던트)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상대를 사랑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할 사람들을 종종 희생시키곤 한다(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면서). 그 대상이 나에겐 남편이었다는 걸 심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고,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지난 3-4년 동안 취미 생활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심리학 강의를 듣고, 생각을 하면서 깨달은 건 결국 문제 있고, 치료받아야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었다. 나 하나만 바꿨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밖에(해결될 수 있다.) 없다는 사실을 드디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하든 다각적으로 생각해 선택하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면 이 행동이 남편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인가를 가장 먼저 묻고 시작한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에서 통과되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신체적 반응과 마음에 대해 묻고 행동한다. 덕분에 어떤 상황과 사건에 처하든 내 반응과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오늘의 내가 과거들을 바라볼 때 참 아쉬운 점이 많다.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이라서, 뭐든 처음이라서, 실수를 할 수밖에 없지만 오랫동안 같은 실수들을 반복했다는 것이 여전히 아쉽다. 아쉬움 때문에 시간을 돌이키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건 영화 속 이야기일 뿐 시간은 공평하고 속절없이 그냥 흘러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과거는 과거니까 앞으로 잘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산다. 가끔 공방에 들어가 취미 생활을 하면서 어머님 말씀이 떠오를 때면 '어머니께 돈을 받고 팔까.'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는다. 그러면서 또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만들어 포장해 둔다.

  내가 내 행복을 찾아가는 것,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하도록 나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공방에 들어가 앉는다. 그리고 새로 산 재료들을 보면서 방긋 웃는다. 이걸로 또 뭘 만들어 볼까. 하고 말이다.

  누가 뭐라든 이제 상관없다. 과거에 누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아프게 했든 그것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게(나를 희생시켜 자신의 것을 채우는 사람들 같은) 사랑받기 위해 나를 소진시키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내가 타인에게 뭘 주든 그건 정말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줄 수 있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줄 거다. 그렇게 타인에게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115-118쪽.

마음이 흐르는 대로 / 지나영 교수

영어 표현 중에 "You teach
people how to treat you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할지는
네가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즉, 어떤 사람이 나를 하찮게
대한다면 스스로가 먼저
"나를 그렇게 대우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신호를
명확하게 상대방에게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서
속으로 불평만 하고 있다면
“나를 그렇게 무가치하게 대해도
괜찮으니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
라고 상대에게 허락하는 것과 같다.
나의 수고와 시간은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무료 서비스'가 아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 알려주는 사람은 바로 나"
- 지나영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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