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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루 님 조카 돌맞이 선물 준비기>

<필요한 물품 선물하기>

<총체적으로 건강한 선물이란
무엇인가 생각 정리하기>





 

  토오루님토오루 님 조카님의 돌이 이제 2달 조금 넘게 남았다. 그래서 조카 님의 돌 선물로 제품들을 준비했다. 사진의 제품들은 토오루 님의 아가(조카) 님과 시누이님의 돌 선물이다. 돌 선물을 미리 준비한 이유는 지난주에 조카님이 감기로 병원에 입원했었기 때문이다. 감기가 너무 심각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아왔는데, 토오루 님이 보여준 사진에서 아가의 코 아랫부분이 완전히 헐어 있었다(어린 시절 내내 아팠기 때문에 아기의 얼굴만 봐도 대충 상태를 알 수 있다.). 감기로 인해 콧물이 많이 나와서 계속 닦아줬고, 그 때문에 연약한 아기 피부가 쓸린 것 같았다. 어차피 선물 혹은 돈을 줄 것이어서 이왕지사 필요한 선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거의 1년 만에(실제로 더 됐을 수도 있다.)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에게 노시부 제품이 있는지, 필요한지 물어봤다. 다행히 언니가 다녔던 소아과 선생님께서도 코 흡입기를 추천하셨단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할 때 오늘의 나는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며 준비한다. 과거에는 무조건 좋은 것 만 상대에게 주면 상대가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해서 주는 데만 급급했다. 상대가 받고 나서 부담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각만으로 준비하고, 줬던 선물들은 선물이 된 경우도 있지만, 선물로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래서 참 억울하기도 했다. 가령 정말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비비크림 같은 걸 줬는데, 상대의 얼굴에 좁쌀 여드름이 생긴 경우다(뭔가를 줄 때 항상 상대방이 무엇이 필요한지 관찰하고 줬었는데, 선물은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돌고 돌아 깨달았다. 이때 원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물어봤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선물을 주기 전 상대방의 필요와 욕구를 잘 관찰하고 배려하는 걸 기본으로 상대방에게 선물을 줘도 되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선물이 필요한 것인지도 묻는다. 그리고 무조건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물을 주고서 후회하지 않을지(상대방이 설사 버린다고 해도) 반복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본 후 선물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나도 선물로 인해 아름다운 마음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노시부 제품을 사줘도 되는지 물었을 때, 가격이 높아서 언니는 부담되지 않냐고 물어오셨다. 나는 당연히 부담된다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평소 내 소비습관에서 30만 원 제품을 뚝딱하고 살 수 있는 경제적, 심리적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는 그 메시지를 보고, 고마운 마음 만 받겠다고, 생각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정말 고맙다며 알겠다고 했고 선물들을 준비했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많은 돈을 버셨다. 아버지의 형제 분들이 아버지께서 돈을 공중에 뿌릴 정도로 벌었다고 이야기했던 걸 떠올려보면, 돈이 정말 많으셨던 걸 다시금 알게 된다. 웬만한 소도시의 건물도 척척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버셨고(그때 건물을 사셔야 했다.), 그 덕분에 친우 분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충분한 재정적 능력으로 남편을 사고로 막 잃은 여인까지(4명의 자녀를 이미 가지신) 삶에 들이셨고, 5명의 동생들을 돈으로 챙길 정도로 후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모든 것들은 돈으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사실 아버지는 자식을 가져서는 안 되는 심리상태를 가지신 분인데, 물질 만능주의 사고관을 가지셨기 때문에 심리적 결핍도 돈으로 채울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셨다(돈이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만능 사고를 가지셨던 것 같다.). 돈이 많아진 아버지는 돈 때문에 스스로도, 주변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드셨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돈 그릇이 커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과하다고 말할 만큼 당당했고,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의 무서운 왕들이 가졌다는 권력형, 분노형, 폭력성, 법과 제도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성격 행태를 보이셨다. 아버지의 삶을 생각할 때 가장 실패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돈을 버는 족족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여인에게 갖다주고, 돈 관리를 스스로 전혀 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돈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어떤 말과 행동도 돈으로 모두 용서된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돈을 버는 능력은 있으셨지만, 쓰고 모으는 능력을 배우지 못하셨고, 당연히 어머니께서 알아서 해 주실 거라며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셨다. 그 덕분에 아버지는 말년에 과거의 환영에 갇혀 매우 어려운 노년을 맞이하게 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돈으로 책임지면서도 나와 동생은 전혀 책임지지 않으셨다(이것마저 타인에게 떠넘기셨다.). 예를 들면 중, 고등학교 때 문제집이 필요해서 또는 다니고 싶은 학원이 있다고 말하면 연락이 되다가도 핸드폰을 꺼놓고, 연락을 끊고 사라지셨다. 이 부분도 아버지 자신 역시 아버지(할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줄 수 있는 능력(심리적, 실질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심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13살에 집에서 나와 굶으면서 전국을 돌아다니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중학생이 되어야 할 무렵에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도시의 중학교에 보내 달라고 고모님 댁에 돈과 함께 아버지를 보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고모님은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내고 돈도 다 써버리셨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힌 일이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완벽히 심리적, 영적, 실질적 고아 상태로 전국을 떠돌아다니셨다고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부유 식물(floating plants)처럼 살다 심리적으로 결핍이 많은 코디 펜던트 성향을 아주 지독하게 가진 어머니를 만나 정착하셨다.

  아버지께서 어려운 노년을 맞이하게 되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친우 분들을 전혀 아낄 줄 모르셨고, 사람 보는 눈이 없으셨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매일 현금으로 많은 돈을 버셨기 때문에(관광 사업이 엄청 잘 되셨다.) 소문을 듣고 주변에 서성이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자신이 어려울 때마다 아버지께 손을 벌렸고, 아버지는 돈을 빌려주면서 폭언을 하셨다. 실제로는 원하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으로 돈을 빌려주다 보니 '능력이 없어서 돈까지 빌리러 와야 되냐.'라며 엄청난 폭언을 하셨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말씀하곤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으니(자신의 입장에서) 얼마나 즐거웠겠나. 덕분에 많은 돈을 빌려줄 때마다 친구들이 떨어져 나갔고, 아버지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점점 더 궁핍해지셨다.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것에 대가(代價)가 있듯 돈을 빌리러 오셨던 친우 분들은 그 순간 받았던 모욕감과 수치심을 돈을 빌린 대가로 충분히 치르셨고, 치렀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돈이 많이면 자신의 결핍을 충분 이상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잃었다. 그래서 노년이 된 후에는 친구 같은 거 다 필요 없다며(쓸데없다며) 스스로를 작은방에 가두셨다. 오늘의 내가 일주일 혹은 그 이상 시간 동안 밖에 전혀 나가지 않아도 잘 살아가는 걸 보면 이 부분 역시 아버지의 유전자를 고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스스로 삶을 책임져야 하고 충분히 책임질 수 있었던 구 가족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스스로의 결핍을 채웠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구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왕 놀이, 영웅 놀이를 하셨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맡은 이정재 님이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로 입성할 때 보였던 영화 장면이 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른다. 아버지는 돈을 버는 족족 필요가 넘쳤던 동생분들의 필요를 챙기면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셨고, 동생들 역시 의존적 인간으로 만드셨다. 이 부분에서 나는 상호의존이라는 공의존형태를 심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동생들은 아버지의 폭력적 언어로 인해 수치심과 모욕감을 대가(代價)로 치렀고, 아버지는 돈을 주면서 자신의 결핍을 채웠다(가족 내의 영웅으로 귀환). 그리고 건강하지 않은 상호 의존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 상호의존의 또 다른 피해자로 결핍이 가득한 내가 탄생했다. 동생분들은 자신들이 대가(代價)로 치른 수치심과 불편함(방어기제와 투사, 통제 욕구 등)을 고스란히 나에게 표출했다. 아버지에게 할 수 없으니(돈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아버지의 대체물인 내게 전가한 것임을 오늘의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과거의 어린 나는 이 부분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고통 속에 잠겼었다.

  아무튼 지난 3년 동안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아버지의 삶을 돌아봤고, 그 안에서 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진 결핍과 상처가 그대로 나와 동생에게 이어진 부분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통해 앞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으로 나눠야 하는지 명확히 배울 수 있는 경험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아무에게나 선물을 하고 돈을 쓰지 않을뿐더러(시간, 돈, 열정 모두 포함), 돈을 사용해야 할 때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가를 반복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생각한다.

  오늘의 내가 토오루 님의 조카님 선물로 준비한 선물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되짚어가면서 배운 교훈을 떠올리며 어렵게 준비했다. 시누이 님의 조카 선물을 반드시 해야 하나.라는 점을 먼저 생각했고,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인가라는 점과 어떤 선물을 해야 상대가 가장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조카 님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했기 때문에 조카님이 백일이 됐을 때 선물을 하지 않았었다. 돌이 되면 한꺼번에 하는 것이 적은 돈을 나눠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이라는(나와 상대 모두에게)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니에게 내가 생각한 돌 선물들과 마음을 조심스레 표현했다. 선물을 준비하기 전 정말 많은 자료들과 유튜브를 살펴봤기 때문에 현재 조카 님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물론 직접 사용하면서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더 이상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기 때문에 언니에게 맡긴다.

  어차피 할 거라면 나를 아주 기분 좋고 행복하게 하고, 가능하면 상대방도 기쁠 수 있도록 하자라는 기본 값을 가지고 선물을 준비하니 행복했다. 나는 가끔 맛있는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자고 조르는 남편에게조차 수전노처럼 동전을 셀 때가 많은데(대신 집에서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필요하다 생각하면 과감하게 돈을 타인에게 사용한다. 이번 선물은 토오루의 소중한 구 가족인 시누이님의 아가를 위한 선물이니 마음을 충분히 담고 싶어 오랫동안 고심했다. 그게 1년 가까이, 아기가 태내에 있을 때부터니 1년 넘게 이뤄졌다.

  예전에 나는 토오루 님의 구 가족에 나도 포함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었다. 가족의 형태에는 확장형(결혼하면 가족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형태)과 독립형(구 가족과 신가족이 완벽히 독립적인 가족으로 타인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타인으로 보는 형태)이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토오루 님의 구 가족은 확장형 가족 형태인데, 오랫동안 이 확장형 가족 안에 내가 포함됐다고, 포함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다 10년 넘게 시부모님과 거의 동고동락하면서(어머니께서 내가 자주 오기를 원하셨고, 자신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자고 가는 걸 원하셨다.) 확장형 가족 형태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노력한다고 해도 상대방에겐 모든 것이 아닐뿐더러 아무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걸 10년 넘게 노력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가족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시부모님 모두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라 오신 덕분에(형제들의 재산 싸움으로 재산은 전혀 물려받지 못하셨지만)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조선시대라면 종이라고 불렀을 만한 집 안을 관리해 주시는 분들이 다수 있으셨단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육체적, 심리적으로 마음을 쓴다고 해도 사용인 이상으로 될 수 없었다는 걸 아주 나중에 깨달았다(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였다.). 이걸 알게 됐을 때 얼마나 상심하고 아팠는지 모른다.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싸우실 때마다 나 때문이라고, 내가 집 안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셨다. 이런 말을 들을 때조차 나는 시부모님의 집 청소를 하고, 무언가 어머니를 위한 것들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피해자가 될 만한 사람으로 나를 선택하셨다는 걸 심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다. 이러니 안에서 터지는 주머니 밖에서도 터진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어린 시절 내내 줘 터지는 주머니로 살아왔는데, 자라고 나서는 시부모님의 터트려도 되는 주머니가 됐다(이때는 단순히 여자친구였으니 시부모님도 아니었다.). 확장형 가족 사이에서 나는 시누이님과 엄청난 결착 관계를 가진 형태의 친구가 됐었는데, 그러면서 이상한 삼각 트라이앵글(어머니, 언니, 나와의 관계) 안에 갇혔다. 그리고 또 다른 트라이앵글인 아버지, 어머니, 나와의 관계에서 구원자, 희생자 역할을 맡았다. 그러니 시누이님의 자녀 분 선물을 준비할 때 이것을 통해 내가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니를 미워하면서 사랑했고, 시부모님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했다. 그런 기간 들 속에서 나의 내면은 더없이 복잡해지고, 점점 더 깨져만 갔다. 구 가족이라는 확장형 가족에 아주 오랫동안 소속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독립형 가족 형태가 총체적으로 건강한 가족형태라는 걸 드디어 인정했고, 명확히 안다. 하나하나의 가족 형태를 인정하면서 경계선을 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배운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신가족 안에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죽도록 미워하고, 사랑했던 언니(이 부분도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언니에게 직접 말했다. 너무 좋아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너무 아팠다고. 그리고 여전히 너무 미워서 내가 너무 힘들다고.). 그리고 그 언니의 소중한 아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면서 토오루 님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 남편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을까 하고 말이다. 남편은 대부분의 경제적 선택을 내게 맡겼기 때문에 이번 선물도 전적으로 내가 선택했다. 그러니 설사 후회하더라도 그 몫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언니와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서 바로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언니는 오랜만에 연락이 된 내게 자기가 너무 하고 싶다며 생일 선물을 준비하면 안 되냐고 물어오셨다. 내가 언니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을 때 이제 서로 선물 같은 건 하지 말자고 했기 때문에 나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한 물음이었다. 언니는 내게 선물을 하지 못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보고 그러면 알아서 하되, 돌려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언니는 즐겁게 웃으며 콜~을 외쳤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역시 선물이라는 것도 타인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다시 깨달았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참 행복했다. 언니와 행복한 기억이 슬펐던 기억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사실 더 힘들었다. 언니는 내게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친구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부모님과 전혀 대화도 하지 않고, 만남을 끊었을 때조차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이때 참석을 3개월 내내(당일 아침까지 고민했다.) 고민하면서 10Kg이 찌고(간 대사에서 이상이 생김) 몸과 마음이 상했다. 1년 넘게 시부모님과 대면조차 안 하던 때라(마지막 시험에서 불합격을 맞고, 모든 인간관계도 끊었던 때임) 갑자기 결혼식에서 뿅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다. 잘해주시다가도 함부로 대하시는 분들이셔 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다. 미워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어서였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언니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선물들을 가득 포장하면서 이제는 언니의 독립성과 내 독립성을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언니가 설사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말자고. 그리고 언니의 행복은 더 이상 내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일들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냈다. 나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최우선 기본 값으로 삼고, 그다음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바탕으로 이번 선물을 준비했더니 정말 행복하다. 그 복잡한 마음과 행복을 오늘의 기록으로 남긴다.

  나는 이제 온전히 나로 존재하기 위해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대상에는 남편도 포함된다. 남편은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주기 위해 내게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돌보고, 남편이 원하는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그러니 오늘을 과거처럼 바쁘게 보내지 않고, 낭비하는 것처럼 보내도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리고 나는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니까. 나의 행복과 만족을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며 살아가기로 했다.


 

1. 공의존 성격이란?

  공의존성격은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의 필요와 요구에 맞추어 찾으며,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종종 불균형적이며, 한쪽이 다른 쪽을 지나치게 돌보거나 통제하는 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2. 공의존적 성격의 특징

  공의존적 성격은 여러 가지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1)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강한 욕구: 공의존자는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타인의 기분을 우선시합니다. 이로 인해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의 의견이나 필요를 억압하게 됩니다.

2) 지나친 책임감: 타인을 돕고 돌보는 데 과도한 의무감을 느끼며, 이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 합니다.

3) 감정적 통제: 공의존자는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찾아내려고 하며, 이는 진정한 소통을 방해합니다. 이로 인해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쌓이게 됩니다.

4) 상대방에 대한 의존: 공의존적인 관계에서는 한쪽이 다른 쪽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독립성을 잃고 서로에게 중독된 상태가 발생합니다. 이는 마치 중독과 같은 형태로,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5) 자기 정체성 상실: 공의존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상대방의 요구에 맞추려 하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3. 공의존의 결과

  공의존적 관계는 결국 서로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각자의 자아와 독립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며, 이러한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4. 참고 문헌

1) Melody Beattie, Codependent No More: How to Stop Controlling Others and Start Caring for Yourself.
2) Timmen L. Cermak, Understanding Codependency (1986).
3) Ross Rosenberg, The Human Magnetic Syndrome.




1. 수치심과 모욕감

  수치심과 모욕감은 개인의 정서적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감정이 타인에게 전가되는 현상은 심리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포함합니다. 수치심은 개인이 자신의 행동이나 특성이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감정이며, 모욕감은 타인에 의해 공개적으로 조롱당하거나 비하당할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 두 감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의 수치심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는 여러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2. 수치심과 모욕감의 정의

1) 수치심: 자신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정으로, 개인의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포함합니다. 이는 종종 개인의 내적 기준과 사회적 기대 간의 불일치에서 비롯됩니다.

2) 모욕감: 타인에 의해 공개적으로 무시당하거나 비하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주로 외부의 공격적인 행동에 의해 촉발됩니다.

3) 수치심과 모욕감의 전가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경험한 개인은 그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여러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4) 공격적인 행동: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낀 사람은 이를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비난함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불쾌감을 덜어내려 할 수 있습니다.

 

5) 사회적 비교: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느끼는 열등감을 상쇄하고자 하는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6) 관계의 파괴: 이러한 전가는 관계를 손상시키고, 신뢰를 잃게 하며, 결국에는 더 깊은 정서적 고통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수치심과 모욕감은 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상대방과의 연결을 어렵게 만듭니다15.

3. 치료적 접근

  수치심과 모욕감을 다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치료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1) 안전한 환경 조성: 치료자는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2) 경청과 공감: 치료자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함으로써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관계 회복을 도울 수 있습니다24.

3) 자기 인식 증진: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그들이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회복하고, 더 나아가 건강한 대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4. 참고 문헌

1) Hartling, L., & Luchetta, T. (1999). "Humiliation: Assessing the Impact of a Powerful Emotion." Journal of Social Issues.
2) Theodorou Therapy (2018). "The Psychology of Shame: How It Destroys."
3) Burton, M. (2014). "Embarrassment, Shame, and Humiliation: Their Clinical Relevance." Counseling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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